임지연 개인전 《연결》

 

기억의 공간,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하여 

임지연은 초기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도시 공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면서 기본적으로 동양화 기반의 풍경 작업에 대해서 주목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오늘날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 경관을 세필로 묘사하여 오고 있다. 

한국화를 공부한 많은 예술가들 중에는 도시 풍경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한국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가 산수화나 풍경을 그리는 과정인데, 과거 산이나 자연적인 절경을 위주로 당시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오늘날에는 현대인이 살고 있는 도시가 풍경의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임지연의 도시 공간은 독특하게도 현재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작가의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도시의 모습을 재구성하여 그려낸다. 

초기 작에서는 작가가 수 개월 거주하였거나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을 여행에서의 기억을 도시 경관의 중심으로 세계 유명 건축물에 집중하였다. 일반적으로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여러 기억 중에서도 건물이나 경관이 명확하게 자리 잡는 것이 아니라 점점 흐릿하게 잔상이 남으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표적인 몇몇의 모습만 기억하기 마련이다. 임지연은 여기에 착안하여 건축물들을 명확하게 묘사하다기보다는 다시 구조적으로 분화시키고, 재조합하여 가상의 건축 공간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건축물은 계속 어딘가로 올라가고, 덧입혀지고, 쌓이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한국화 특유의 반복에서 오는 수행적인 성격이 건축물들이 반복되면서 오는 과정에 접목된다. 이 과정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임의의 지점들을 지정하고, 화면에 각각 다른 시점들을 그린뒤 하나의 이미지로 합쳐 새로운 구조물을 탄생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여행자는 수백년이 된 건물 속을 탐험하면서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마치 그 시대에 속해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임지연은  시대를 오고가는 감정적인 교류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축물에 대한 잔상을 통해 다시 다층적인 공간을 재현해 내는 것이다. 이렇게 임지연의 도시 공간은 허구와 실재를 오고가며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서 허구와 실재는 어떻게 보면 같은 말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것을 파악하기 위한 이성적인 사고에 의해 참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사고 과정에 의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기억 속에서 관계 맺어진 건축물들은 실제로 존재하기도 하면서 끊임없는 사고 작용의 결과물이 되어, 사고 과정에서 덧입혀지면서 허구가 되기도 하는 굴레 속에 놓이게 된다. 결국 상상 속의 도시 공간은 실제로 존재했다가도 다시 임의의 지점들로 연결되어 허구의 결과로 반복된다. 

“이 땅 풍광이 다 내 머릿속에 있다”는 변관식의 말처럼, 과거에 경험했던 풍경은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그림을 그릴 때에는 작가 자신의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했던 바가 일치되어 손 끝에 묻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임지연의 작업에서도 여행했던 일, 잠시 거주했던 곳 등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들이 축약되어 새로운 건축물들이 그려질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최근 작업에서는 허구와 실재를 오고가는 과정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기존의 작업들이 여행지를 다녀온 잔상에서 비롯되었기에 유명한 건축물이나 현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건축물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점차 작업에 등장하는 건축물은 간단한 모양새만 남아 추상적인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축물들을 잇는 과정은 처음부터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건축물들을 따로따로 그리면서 하나하나 이어간다. 일종의 거점을 먼저 지정하고, 이들을 연결하여 하나로 완성해 가는 것이다. 기억에 의존하는 방식을 넘어 비정형적인 구축 과정에 대해 고민하여 즉흥적으로 시점을 연결한다. 작품제목에서 보듯 하나의 건축물들은 ‘Unit’이 되어 구조적으로 연결된다. 각각의 유닛들은 재조합되고 확장되면서 언제 어떻게 뻗어갈지 모르는 확장적 연결성 속에 놓인다. 

이렇게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더욱 강조되는 것은 첫 번째로 ‘드로잉’적 행위이다. 과거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처럼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수행적인 성격이 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미적인 가치 추구를 넘어 회화에서 ‘그리기’가 강조됨으로써 작가의 무엇인가가 분출되고 표현되는 과정이 작업에서 주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가 그리기 자체에 방점을 두고, 어떤 감정을 표현했다가도 어떤 감정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기도 하는 양가적인 심리가 관람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회화가 진정한 자아를 추구하는 매체라는 선대의 조언들이 작가에게도 실천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하나하나를 그리는 움직임은 세밀하지만 이렇게 움직임이 주를 이루다보니 전체는 점차 거대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작업의 크기도 초기작에 비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두 번째는 초기작과 달리 최근작은 작은 세필의 건축물이 모여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하나의 추상적인 형상을 이루면서 거대한 화면 속에서 균형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점, 선, 면을 표현하듯 세밀한 건축물은 유닛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감상자가 처음에 마주하는 것은 커다란 면의 균형적인 모습인 것이다. 액션 페인팅과 추상적 형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행위에 의해 표현된 붓의 형상은 구체적인 사실적 묘사보다는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 구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때의 추상성은 허구와 실재가 한 그림 안에서 공존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건축물의 모습과 공존하면서 모호하거나 허상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적 유닛들로 꽉 채워진 규정적인 모습에 더 가깝다. 개별적인 활동들이 하나 하나 모여 하나의 군상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사물과 세계가 연결되듯 유닛이 된 건축물은, 건축물과 빈 공간끼리 긴장감을 갖고, 균형을 이루면서 커다란 우주가 된다. 절제되어 있는 균형감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여백까지도 감성의 척도가 되도록 한다. 

또한 커다란 유닛 내의 세밀함과 추상적인 먼 곳에서의 형상이 동시에 오고가는 과정은 개인의 미시사와 역사적인 거시사가 연결되어 있는 지점을 유추하게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가에게도 작업을 하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들, 새롭게 추구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개인적인 상황들이 이리저리 증폭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하나하나의 사연들은 다양한 건축물의 유닛에 담긴다. 그리고 하나의 작업, 하나의 전시가 완성되면서 이러한 상황들은 사회 속에 맥락화되는 과정을 겪어왔다. 

임지연의 작업은 이처럼 작가의 수행적 차원의 ‘그리기’ 활동에서 시작하여 각각의 유닛을 이어가고, 임의적인 ‘잇기’의 결과물은 실제로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 사람들의 거주지들을 연결하여 동시적 성격의 결과물을 낳는 과정이라 하겠다. 

고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