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 개인전 《이정아》

 

 

반전의 속내

전시 제목이 <이정아>이다. 작가의 이름으로 제목을 정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으레 작가의 이름을 딴 개인전으로 작명하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그렇지 않은 ‘남다른’ 이유이다. <이정아>의 경우는 후자이다.

 

HIDING, AVOIDING, PROTECTING

이정아 작가의 작업은 반전의 연속이다. 먼저 이번 전시의 시초가 되었던 작품 <SITUATION_B>부터 살펴보자. 중년 여성의 뒷모습이 흑백으로 그려진 회화이다. 특이사항은 뒷머리 형태이다. 정리가 전혀 안 된 짧은 머리가 언캐니한 소용돌이를 치는 가운데, 드문드문 고개를 내민 새치가 적나라하다. 이것은 다름 아닌 이정아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밤에 샤워를 하고 자는 습관이 있는 작가는 어느 날 아침 무심코 자신의 충격적인 뒷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수 빗자루처럼 드문드문 난’, ‘뻣뻣하고 도드라진’ 뒷머리 패턴은 작가의 모습을 연재한 <SITUATION>알파벳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포함해 회화의 소재가 되는 피사체를 카메라로 촬영하고, 그리고 싶은 하나의 대상을 선택하여 그것에 집중하여 배경과 부차적인 요소들을 제거한 뒤, 회화로 옮기는 과정을 취한다. <SITUATION_A>에서 집중의 대상은 마스크이다. 마스크를 낀 작가는 흑백의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마스크는 숫제 작가의 얼굴과 회화 전면을 장악하고 있다. 어떤 의미일까? 이번 시리즈의 테마는 ‘작가가 일상에서 발견하는 자신의 이미지’이다. 작가는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 중에서 가장 흔한 모습이었던, ‘마스크를 끼고 있는 모습’을 소재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얼굴을 가림으로 인해서 역설적으로 대상에 더욱 시선을 끄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관람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대상을 유추하기 위해 바디랭귀지와 상황(situation) 등 좀 더 대상의 흔적에 집중하게 된다.

작가의 전작들은 주로 타인을 관찰하는 시선에서 출발했었다. 현대사회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시선이 기울어졌다. 이 때 마스크는 타인을 관찰할 때 용이한 도구였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껏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가림막의 역할을 수행했다. 숨고(hiding), 피하고(avoiding), 보호하는(protecting) 마스크는, 작가를 포함해 모든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장치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SITUATION> 시리즈는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담고 있기 보다는 그것을 거울처럼 마주하고 있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회화는 ‘이정아’를 그렸지만, 이것은 자화상이 아니다.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외부를 마스크로 보호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의 이면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가 받아들이는 현실과 사회의 분위기가 긍정적이기 힘들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이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솔직해야 하며, 투명해야 한다. 인간답게 살기 힘든 사회, 이상과 정상이 유지하기 힘든 사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현대인의 기본자세가 된 사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죄의식을 상실한 사회’ 이다. <SITUATION> 작업은 그런 맥락에서 거울의 정면, 즉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사회의 진짜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흑백의 모노톤에서 두 남자들의 몸싸움을 담은 이 그림은, 얼핏 용역들의 몸부림을 연상시킨다. 정작 이 그림의 실체는 일본 퍼포먼스 팀의 공연을 담은 작품이다. 2010년 한 상업갤러리에서 민머리와 맨발의 젊은 남성 퍼포먼서 둘은 말 한 마디 없이 한 시간이 넘도록 묵묵한 싸움에 집중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작가는 피가 날 때까지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캔버스에 담았다. 비평가에게 이 작업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자연스럽게 ‘용역’ 이라는 한국사회의 특수한 폭력과 분쟁의 현장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외피를 소재로 삼으면서 실상은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이정아 작가의 반전은 이렇듯, 관객과 비평가의 마음에 있는 양심과 심연의 거울과 맞닿아 있다.

섬세한 감수성의 민낯

이정아 작가의 감수성은 섬세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통로는 대담하다. 예술가의 다치기 쉬운 감수성이 민낯을 드러낼 때, 깜짝 놀랄 정도의 솔직함과 투명함이 엿보인다. 마치 활짝 열어제낀 창문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작가에게 작업이라는 것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이다. 작업은 작가와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이며, 비평가는 그것을 직관하기 위해 눈을 밝히는 훈련을 한다. 때문에 작가가 창문을 열기까지는 깊은 고민이 수반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예전 작업은 타인을 관찰하는데 방점을 두었지만, 지금은 현재의 자아와 사회의 문제들에 집중하였다. 여기에는 작가를 둘러싼 상황과 현실을 직시하고, 작가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작가와 작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분분한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비평가의 입장은 ‘작업은 작가의 일부’라는 것이며, 이것은 어느 정도 진실을 담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솔직함을 무기로 삼은 작가의 용기와 긴장감이 작업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온다.

이정아 작가의 두 번째 반전은 감성의 영역에 드리워져 있으며, 그것은 상반된 두 가지의 감성으로 표현된다. 그리는 대상을 될 수 있는 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함과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섬세함이다. 예를 들어 <SITUATION_HAND> 시리즈는 각각 왼손과 오른손의 형상을 담고 있으며 이것 역시 작가의 손이다.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사람의 손이라고 믿기 힘들 수도 있다. 오랜 기간 손을 사용하여 노동을 한 오른손은 관절염과 파스 등으로 ‘너덜너덜’ 해졌다. 반면에 왼손은 상대적으로 말짱하다. 화해라도 할 듯 서로를 향해 뻗은 두 손은 중견작가로 넘어가는 동시대와 동년배 예술가의 삶을 대변하는 솔직함이 담겨 있다.

그런가하면, <SITUATION_SUN> 시리즈에는 작가가 포착한 대상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작업이다. ‘태양’이라는 제목의 이 작업의 형체를 파악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초음파 사진 같기도 하고, 이름 모를 우주의 행성 같기도 하다. 정답 아닌 정답은 ‘의자’인데, 어느 미술관 구석에 버려져 있는 의자를 그린 것이다. 한 때 ‘무슨 스타일’ 로 유행했던 디자인의 의자는 세월의 나이테가 먼지와 물자국과 함께 남아 있다. 이 작업의 제목이 ‘태양’인 이유는 태양의 조도와 위치에 따라 의자의 형체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작가 특유의 감수성으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의자의 다양한 모습에서 생명(살아있음)을 느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반전의 반전

<이정아>의 마지막 반전은 좀 더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지금까지 작가가 전시해온 공간은 미술관과 갤러리 등 전형적인 화이트큐브였다. 이번 전시 <이정아>는 회색 지하 동굴과 같은 스페이스55에서 진행되었다. 관객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작업이 <SITUATION_A>(마스크 작업)이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 들을 지나, 다시 동굴의 입구에 당도하면, 불현 듯 꽃과 풀과 푸른 하늘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흑백의 세계에서 컬러의 세계로의 반전이고, 관찰의 주체에서 다시 관찰의 객체로 넘어가는 동선이다. <SITUATION_BLOOM>은 작가가 동네에서 개를 산책시키며 찍은 풍경이다. 이름 없는 풀과 꽃이 캔버스 안에 만개해있다. 무심코 발견한 생명은 작가 특유의 ‘직시의 대상’으로 정직하게 그려져 있다. 생략은 있되, 변형은 없으며, 원형 그대로의 자연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도, 푸른 하늘과 꽃이 주는 생명력에 희망이라는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정아>의 반전의 반전, 최후의 반전은 희망이다.

 

조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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